조기상 작가의 공예
국내에서 자동차를 비롯한 운송 기기 디자인을 전공한 조기상. 그는 2000년대 중반 이탈리아 디자인학교 IED에서 유학하며 요트 디자인을 공부했다. 이후 이탈리아의 주문 제작 요트 디자인 회사에 취직했고, 세계 요트 디자인 대회 MYDA(Millennium Yacht Design Award)에서 2008년부터 3년 연속 ‘국제 요트 디자인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특히 2010년 시상식에선 자신의 우상인 BMW 전 수석 디자이너 크리스 뱅글을 만나 집으로 초대받기도 했다. 하지만 크리스 뱅글은 얼굴이 한껏 상기된 그에게 대뜸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한국 디자인의 특징이 뭐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데 이후 엎친데 덮친 격으로(?) 세계 금융 한파가 닥쳤고, 요트 산업 역시 타격을 받아 그는 짐을 싸 한국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 왔지만, 그의 머릿속엔 크리스 뱅글의 질문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2011년 한국에 돌아온 그는 오랜 친구들과 함께 브랜드 컨설팅 회사를 차렸다. 이는 지역의 인적ㆍ물적 자원을 분석해 그 가치를 키우고 브랜드화하는 회사였다. 그리고 2015년엔 또 다른 이들과 페노메노라는 회사를 차렸다. 그는 이곳에서 전국 곳곳을 누비며 농부나 장인을 만났고, 그들을 위해 디자인과 브랜딩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왜 그는 갑자기 이런 일을 시작했을까? “이탈리아에선 주문 요트 제작으로 단 한 사람의 만족을 위해 일했지만, 한국에선 다양한 이들을 위한 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죠. 또 그걸 통해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디자인의 중요성도 느끼고 싶었고요. 쉽게 말해, 한 척에 1000억쯤 하는 호화 요트를 디자인하다 사과 한 알에 목숨 걸게 된 거죠. 물론 일은 재미있어요. 이탈리아에 있을 땐 자각하지 못한 한국인으로서의 ‘브랜드’와 ‘디자인 정체성’을 찾고 있기도 하고요.”
당시 그가 한국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경북 봉화의 사과 재배 농부에게 브랜드를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농장을 돌아다니며 영세한 농부와 대중 사이의 접점을 만드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그 일은 운 좋게도 이후 큰 회사들과 연결됐다. 빙그레 ‘따옴’ 등의 브랜드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고, 국립무형유산원 등에 디자인 자문을 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그러다 또 다른 흥미로운 걸 발견했다. 국내 공예 장인들의 공예품이었다. 그는 그릇부터 섬유, 가구 등을 만드는 장인들을 만나며 우리 것이 미학적으로 아주 뛰어나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지만 마냥 놀라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디자이너였다. 문제를 풀어야 했다. 문제가 뭐였냐고? 요새 사람들은 왜 이 멋진 물건을 쓰지 않는가에 대한 아주 원초적인 문제였다. 그리고 얼마 뒤 그가 만든 브랜드가 바로 ‘아우로이(Auroi)’다.
2011년 한국에 돌아온 그는 오랜 친구들과 함께 브랜드 컨설팅 회사를 차렸다. 이는 지역의 인적ㆍ물적 자원을 분석해 그 가치를 키우고 브랜드화하는 회사였다. 그리고 2015년엔 또 다른 이들과 페노메노라는 회사를 차렸다. 그는 이곳에서 전국 곳곳을 누비며 농부나 장인을 만났고, 그들을 위해 디자인과 브랜딩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왜 그는 갑자기 이런 일을 시작했을까? “이탈리아에선 주문 요트 제작으로 단 한 사람의 만족을 위해 일했지만, 한국에선 다양한 이들을 위한 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죠. 또 그걸 통해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디자인의 중요성도 느끼고 싶었고요. 쉽게 말해, 한 척에 1000억쯤 하는 호화 요트를 디자인하다 사과 한 알에 목숨 걸게 된 거죠. 물론 일은 재미있어요. 이탈리아에 있을 땐 자각하지 못한 한국인으로서의 ‘브랜드’와 ‘디자인 정체성’을 찾고 있기도 하고요.”
당시 그가 한국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경북 봉화의 사과 재배 농부에게 브랜드를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농장을 돌아다니며 영세한 농부와 대중 사이의 접점을 만드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그 일은 운 좋게도 이후 큰 회사들과 연결됐다. 빙그레 ‘따옴’ 등의 브랜드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고, 국립무형유산원 등에 디자인 자문을 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그러다 또 다른 흥미로운 걸 발견했다. 국내 공예 장인들의 공예품이었다. 그는 그릇부터 섬유, 가구 등을 만드는 장인들을 만나며 우리 것이 미학적으로 아주 뛰어나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지만 마냥 놀라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디자이너였다. 문제를 풀어야 했다. 문제가 뭐였냐고? 요새 사람들은 왜 이 멋진 물건을 쓰지 않는가에 대한 아주 원초적인 문제였다. 그리고 얼마 뒤 그가 만든 브랜드가 바로 ‘아우로이(Auroi)’다.
‘아름다운 우리 것을 아울러 이롭게 한다’는 뜻의 아우로이는 우리 전통 장인의 기술을 활용하면서 현대화된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다. 예전 방식을 고집하는 장인들의 공예품을 조금만 현대화해 세계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조기상이 아우로이를 만든 이유다. “지방을 다니다 보면 장인들이 트렌드에 둔감하기도 하고, 여전히 옛 방식만 고집하는 게 너무 아쉬웠어요. 예를 들어, 옛 유기그릇은 너무 무겁고 크기가 커서 사용 후 닦기도 힘들잖아요. 지금은 옛날 사람들보다 밥도 훨씬 적게 먹는데요. 그래서 장인과 상의해 밥그릇과 국그릇의 크기를 줄이고 얇게 만들어 ‘유기그릇은 무겁다’는 단점을 보완한 모던 유기 세트를 만들어 내놨어요. 겉면에 옻칠 가공을 하는 등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한 셈이죠.”
단순한 선과 비례만으로 조형미를 드러내면서 소재에 집중하는 디자인 철학은 그가 요트 디자이너로 활동할 때나 전통 공예를 현대화할 때나 일관되게 적용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후 아우로이라는 이름으로 일련의 제품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에서 난관이 없었던건 아니다. 공예 산업 자체가 수공예인 데다, 생산량도 많지 않아 생계 걱정을 하는 장인들과 협업하는 건 늘 중요한 이슈였다. 따라서 대량생산품을 만드는 방법과 수공예품을 만드는 방법의 타협점을 찾는 시간이 길어졌다. “결국 장인들도 뭔가가 팔려야 존재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소비라는 건 일상에서 자주 쓰여야 하죠. 그래야 닳고, 없어지면 또 사고요. 그러려면 가격도 낮출 필요가 있고, 그러다 보면 장인들도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존재하죠. 실은 장인들도 그런 부분을 알아요. 그런데 본인이 그 끈을 놓아버리면, 다시는 그 가격을 못 받을까 우려하는 부분이 있죠.”
그럼에도 지난 3~4년간 조기상은 아우로이를 통해 서구적으로 바뀐 식생활에 맞춰 유기 접시와 포크, 나이프 등을 만들어냈다. 장인의 기술과 그의 디자인을 결합한 상품은 외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파리와 밀라노, 베를린, 뮌헨 등 세계 도시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참가해 좋은 반응도 얻었다. 또 그가 디자인한 그릇은 청와대 정상회담 만찬에 쓰이기도 했다. 현재 아우로이는 유기장과 옹기장, 사기장, 옻칠장, 목조각장, 침선장, 각자장, 소목장 등의 기술을 접목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 “요샌 저렴한 공산품에 익숙한 소비자와 신기술 개발에 관심 없는 장인을 설득해 가격을 낮추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또 그간 만든 400여 개에 달하는 아우로이 제품을 웹을 통해 판매할 방법도 연구하고 있죠. 아마 올 3월이면 아우로이 웹(http://auroi.kr)을 통해 대중에게 공개할 수 있을 거예요. 그간 페노메노나 다른 업무에 밀려 물건을 만들어놓고도 판로를 뚫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꼭 이뤄낼 생각입니다.”
덧붙여 그는 얼마 전부터 전국 각 지역의 장인들이 만드는 제품과 지역의 이야기를 묶어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미디어 콘텐츠 플랫폼 ‘비비지지(bbgg)’도 운영하고 있다. 페노메노를 통해 다양한 환경을 만들어가는 공간 사업(지역, 건물, 설치미술)과 브랜드 컨설팅을 해주는 용역 사업을 전개하고, 자체 브랜드 아우로이와 비비지지를 통해 지속적으로 장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생각. 정말 기특하지 않나?
지난 1월의 어느 날, 창덕궁이 슬쩍 내려다보이는 서울 원서동 페노메노 사무실엔 그의 디자인으로 장인들이 만든 나무 재질의 컵과 접시, 젓가락 등이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통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볕에 감과 귤이 평화롭게 익어가고 있었고, 멋들어진 조형이 눈길을 끄는 자연목과 돌멩이 등도 모두 공간에 자연스레 녹아 있었다. 그는 얼마 전 완성했다는 철재로 만든 상을 만지작거렸고, 에디터는 그에게 수년 전 크리스 뱅글이 궁금해했다는 ‘한국 디자인의 특징’을 찾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말로 정의할 필요가 있을까요?”라고 짧게 답했다. 우리 것이 중요하다고 백날 말로 떠들기보다, 먼저 끊임없이 그것을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고 믿는 이의 대답이었다. 우리 장인들과 협업해 현대적 관점의 브랜드를 만들고, 각광받는 제품을 선보이는 것은 물론 장인들의 수익 개선에도 도움을 주는 그의 내일을 눈여겨보자.
단순한 선과 비례만으로 조형미를 드러내면서 소재에 집중하는 디자인 철학은 그가 요트 디자이너로 활동할 때나 전통 공예를 현대화할 때나 일관되게 적용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후 아우로이라는 이름으로 일련의 제품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에서 난관이 없었던건 아니다. 공예 산업 자체가 수공예인 데다, 생산량도 많지 않아 생계 걱정을 하는 장인들과 협업하는 건 늘 중요한 이슈였다. 따라서 대량생산품을 만드는 방법과 수공예품을 만드는 방법의 타협점을 찾는 시간이 길어졌다. “결국 장인들도 뭔가가 팔려야 존재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소비라는 건 일상에서 자주 쓰여야 하죠. 그래야 닳고, 없어지면 또 사고요. 그러려면 가격도 낮출 필요가 있고, 그러다 보면 장인들도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존재하죠. 실은 장인들도 그런 부분을 알아요. 그런데 본인이 그 끈을 놓아버리면, 다시는 그 가격을 못 받을까 우려하는 부분이 있죠.”
그럼에도 지난 3~4년간 조기상은 아우로이를 통해 서구적으로 바뀐 식생활에 맞춰 유기 접시와 포크, 나이프 등을 만들어냈다. 장인의 기술과 그의 디자인을 결합한 상품은 외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파리와 밀라노, 베를린, 뮌헨 등 세계 도시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참가해 좋은 반응도 얻었다. 또 그가 디자인한 그릇은 청와대 정상회담 만찬에 쓰이기도 했다. 현재 아우로이는 유기장과 옹기장, 사기장, 옻칠장, 목조각장, 침선장, 각자장, 소목장 등의 기술을 접목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 “요샌 저렴한 공산품에 익숙한 소비자와 신기술 개발에 관심 없는 장인을 설득해 가격을 낮추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또 그간 만든 400여 개에 달하는 아우로이 제품을 웹을 통해 판매할 방법도 연구하고 있죠. 아마 올 3월이면 아우로이 웹(http://auroi.kr)을 통해 대중에게 공개할 수 있을 거예요. 그간 페노메노나 다른 업무에 밀려 물건을 만들어놓고도 판로를 뚫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꼭 이뤄낼 생각입니다.”
덧붙여 그는 얼마 전부터 전국 각 지역의 장인들이 만드는 제품과 지역의 이야기를 묶어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미디어 콘텐츠 플랫폼 ‘비비지지(bbgg)’도 운영하고 있다. 페노메노를 통해 다양한 환경을 만들어가는 공간 사업(지역, 건물, 설치미술)과 브랜드 컨설팅을 해주는 용역 사업을 전개하고, 자체 브랜드 아우로이와 비비지지를 통해 지속적으로 장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생각. 정말 기특하지 않나?
지난 1월의 어느 날, 창덕궁이 슬쩍 내려다보이는 서울 원서동 페노메노 사무실엔 그의 디자인으로 장인들이 만든 나무 재질의 컵과 접시, 젓가락 등이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통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볕에 감과 귤이 평화롭게 익어가고 있었고, 멋들어진 조형이 눈길을 끄는 자연목과 돌멩이 등도 모두 공간에 자연스레 녹아 있었다. 그는 얼마 전 완성했다는 철재로 만든 상을 만지작거렸고, 에디터는 그에게 수년 전 크리스 뱅글이 궁금해했다는 ‘한국 디자인의 특징’을 찾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말로 정의할 필요가 있을까요?”라고 짧게 답했다. 우리 것이 중요하다고 백날 말로 떠들기보다, 먼저 끊임없이 그것을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고 믿는 이의 대답이었다. 우리 장인들과 협업해 현대적 관점의 브랜드를 만들고, 각광받는 제품을 선보이는 것은 물론 장인들의 수익 개선에도 도움을 주는 그의 내일을 눈여겨보자.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JK(인물)
사진 JK(인물)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