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nt Laurent - Marketing

1)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한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이브 생 로랑은 기성복 라인인 리브 고시 컬렉션을 통해 고상한 하이 패션과 대중적인 스트리트 패션의 높은 벽을 허물었고, 늘 ‘나는 여성이 내 옷 안에서 좀더 당당해지길 원한다’고 말하곤 했다. 이브 생 로랑에게 패션이란 고상한 귀부인도 자유분방한 스트리트 패션을 입을 수 있고 반대로 자유분방한 소녀도 멋진 슈트를 입을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이브 생 로랑은 르 스모킹을 통해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팬츠 슈트를 여성도 입을 수 있도록 했고, 시스루 룩을 통해 감춰야 했던 여성의 신체를 드러냄으로써 여성이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이브 생 로랑은 패션계에서 ‘진정으로 여성을 위로하는 옷을 만들었다’고 평가 받는다.

2) 문화적 아이콘과 이브 생 로랑

이브 생 로랑은 다수의 연극, 영화 의상을 제작했다. 1966년 이브 생 로랑은 파리 앰배서더 극장(Le Théâtre DesAmbassadeurs)에서 상연한 장 콕토(Jean Cocteau)감독의 연극 ‘지옥의 괴수들(Les Monstres Sacrés)’ 중 아를레티(Arletty)의 의상을 디자인했고, 1967년 영화 ‘세브린느(Belle De Jour)’에서 카트린 드뇌브(Catherine Deneuve)의 의상을 디자인하여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1968년의 영화 ‘열애(La Chamade)’, 1969년 프랑수아 트뤼포(François Roland Truffaut) 감독의 영화 ‘미시시피의 인어(La sirène du Mississipi)’에서 카트린 드뇌브가 입은 의상 역시 모두 이브 생 로랑이 디자인했으며, 1978년 루이 주베 극장(Athénée Théâtre LouisJouvet)에서 열린 장 콕토의 연극 ‘쌍두독수리(L'Aigle à deux têtes)’와 1980년 ‘나는 고발한다(Cher Menteur)’의 의상도 이브 생 로랑이 디자인했다.
이브 생 로랑은 ‘피가로의 결혼(Le Mariage De Figaro)’을 비롯하여 ‘노트르담 드 파리(Notre Dame De Paris)’, ‘온종일 숲 속에서(Des Journées Entières Dans Les Arbres)’ 등의 의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기업 정보

1) 케링 그룹(Kering Group)

생 로랑의 모기업 PPR그룹(피노 프랭탕 레두트 Pinault Printemps Redoute)은 2013년 케링(Kering) 그룹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구 PPR그룹은 1963년 프랑수아 피노(François Pinault)에 의해 설립된 프랑스 럭셔리 패션 그룹이다. 현재 케링 그룹은 설립자 프랑수아 피노의 아들 프랑수아 앙리 피노 회장이 경영을 담당하고 있으며 사명을 케링 그룹으로 변경한 이후 유통 사업을 정리하고 명품, 의류, 액세서리 브랜드에 집중하고 있다.

생 로랑은 1999년 11월
케링 그룹의 소유가 되었다.

2) 연관 브랜드

케링 그룹은 생 로랑 이외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발렌시아가(Balenciaga), 부쉐론(Boucheron), 브리오니(Brioni), 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 등의 의류, 액세서리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케링 그룹은 2013년 영국의 영 디자이너 레이블 크리스토퍼 케인(Christopher Kane)의 대주주가 되었고, 뉴욕의 패션 브랜드 알투자라(Altuzarra)에 지분투자를 하며 소주주로 자리매김하는 등 명품 패션을 중심으로 한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다.

·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보테가 베네타는 1966년 미켈레 타데이(Michele Taddei)와 렌초 첸자로(Renzo Zengiaro)가 설립한 이탈리아 브랜드이다. 이탈리아어로 ‘베네토 장인의 아틀리에’를 의미하며 장인이 가죽 끈을 하나하나 엮어 만든 위빙 가죽, 일명 인트레치아토(Intrecciato) 기법으로 만든 백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 뉴욕 상류층에게 인기가 많았다. 2001년 2월, 당시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톰 포드(Tom Ford)의 추천으로 PPR 그룹(현 케링 그룹)이 인수했다. 2001년 6월 독일 출신의 디자이너 토마스 마이어(Tomas Maier)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어 브랜드명이나 로고를 부각하지 않는 ‘은밀한 럭셔리’ 컨셉트로 인기를 모았다. 2014년에는 홈컬렉션을 론칭해 가구, 인테리어 제품으로 라인을 확장했다.

· 브리오니(Brioni)
브리오니는 1945년 나자레노 폰티콜리(Nazareno Fonticoli)와 가에타노 사비니(Gaetano Savini)가 설립한 고급 남성 슈트 브랜드이다. 1952년, 피렌체에서 최초의 남성복 컬렉션을 열면서 고급 남성복으로 알려졌다. 1995년 뉴욕 57번가에 브리오니 매장을 열며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브리오니는 2011년, 미국 소비자 기관인 럭셔리 인스티튜트(Luxury Institute)가 연소득 27만 2천 달러의 미국 남녀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럭셔리 브랜드 순위 지수에서 ‘남성 의류 부문 최고 럭셔리 브랜드’로 선정되었다. 2012년에 PPR 그룹(현 케링 그룹)이 인수했다.

3) 브랜드 가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은 1985년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프랑수와 미테랑 (François Mitterrand) 대통령으로부터 프랑스의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Chevalier De La Légion D’Honneur)를 수상했고, 2001년과 2007년에도 프랑스 전대통령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와 니콜라스 사르코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Commandeur DeLa Légion D'honneur(2001), Grand Officier De La Légion D'honneur(2007))를 수여 받아,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영예를 얻었다.
2013년 글로벌 디자인 잡지 월페이퍼(Wallpaper)가 선정한 베스트 리브랜딩 어워드(Best Rebranding Award)에는 에디 슬리만이 이끄는 생 로랑이 선정되었다.

4) 세계 진출 현황 및 규모

생 로랑은 한국, 중국, 홍콩, 일본, 파리, 이탈리아, 미국, 두바이 등 전 세계에 약 120여 개의 매장에 있다. 2013년 케링 그룹은 에디 슬리만을 영입한 뒤 생 로랑 파리의 매출이 12% 성장했다고 발표했다.

생 로랑은 2013년 5월, 파리 몽테뉴 거리(Montaigne Ave)와 6월 뉴욕 소호의 그린 거리(Green St.), 7월에 홍콩 센트럴 20 체이터 로드(20 Chater Road)에 새로운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를 열었다.

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에디 슬리만은 플래그십 스토어에 프랑스 장식 예술, 아르 데코(Art Deco)를 모던하게 재해석하여 생 로랑의 변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건축 자재를 최대한 절제한 것이 특징이며 가공되지 않은 표면의 콘크리트, 블랙&화이트 대리석, 실버&골드의 진열 케이스, 니켈(Nickel) 도금 처리 및 매끈하게 다듬은 브라스(Brass, 놋쇠 장식) 등이 조화된 공간은 생 로랑의 미니멀함을 표현하고 있다. 극도로 모던한 소재로 공간에 긴장감을 부여하는 한편, 가구는 르네 에르브스트(René Herbst), 마르셀 브루어(Marcel Breuer), 쥘 르루(Jules Leleu) 등의 빈티지를 사용해 고전과 현대가 조화되는 생 로랑의 현재를 표현했다.
몽테뉴 거리Montaigne Ave

홍콩 센트럴 20 체이터 로드20 Chater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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