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극 두 귀재의 ‘강렬한 유혹’
ㆍ로버트 윌슨의 ‘셰익스피어 소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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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르파주의 ‘바늘과 아편’ |
이미지극의 걸작 두 편이 잇따라 한국 무대에 오른다. 로베르 르파주(58)의 <바늘과 아편>은 9월17~19일 LG아트센터에서, 로버트 윌슨(74)의 <셰익스피어 소네트>는 10월15~17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한국 관객과 만난다. 이미지극의 귀재, 혹은 거장으로 불리는 두 연출가의 작품인 까닭에 관심이 쏠린다.
캐나다 출신의 르파주는 1984년 데뷔 직후부터 세계 연극계의 일관된 주목을 받아온 연출가, 배우 겸 작가이기도 하다. 특히 1991년 초연했던 <바늘과 아편>은 그에게 ‘천재’의 호칭을 부여했던 화제작이었다. 고독을 치유하려고 약물에 의존했던 시인 장 콕토, 20세기의 혁신적 뮤지션이었던 재즈트럼펫 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의 삶을 극화한 연극이다. 첨단 테크놀로지의 과감한 사용, 압도적인 시각적 이미지의 구축으로 인간의 고독을 사무치게 그려냈다는 평을 들었다.
이후 첨단 기술을 활용한 이미지의 구축은 르파주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형식이 품고 있는 “인간의 이야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연극평론가 김윤철(66·국립극단 예술감독)은 “르파주의 연극은 이미지가 매우 강렬하지만 관통하는 주제는 언제나 인간”이라며 “내러티브가 강한 작가, 테크놀로지와 휴머니티를 가장 빼어나게 융합하는 예술가”라고 평했다. 또 “첨단 기술을 과시적으로 도입하는 연출가들도 종종 있지만, 르파주는 언제나 아주 쉽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것을 활용한다”고 말했다.
르파주는 2007년 유럽극장연합과 국제연극평론가협회가 주관하는 유럽연극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연극작가로 공인받는다. 1986년 시작된 이 연극상의 수상자들은 피터 브룩, 조르지오 스트렐러, 로버트 윌슨, 피나 바우슈, 레프 도진, 해롤드 핀터 등의 거장들이었다. 르파주는 50세의 ‘젊은 나이’에 상을 받아 화제였을 뿐 아니라 비유럽 지역에 기반을 둔 연출가로서 최초의 수상인 까닭에 더욱 주목받았다. 당시 그는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시대의 연극은 우리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마지막 화합의 장으로서 그 어느 시기보다 중요해졌다.”
이번에 공연되는 <바늘과 아편>은 1991년 초연작을 2013년에 다시 손질해 연출한 두번째 버전이다. 초연 당시에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그림자로 처리됐으나 이번에는 배우가 직접 등장한다는 점이 다르다. 공중에 매달린 대형 큐브가 회전하면서 뉴욕과 파리의 재즈 클럽, 별빛 쏟아지는 밤하늘 등으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콜라주 무대’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르파주는 “사랑에 대해 지나간 후에 깨닫는 것이 더 많은 것처럼, 이번 버전이 초연보다 더 성숙하고 깊어졌다”고 자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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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윌슨의 ‘셰익스피어 소네트’ |
미국 출신의 연출가 윌슨은 두말할 필요 없는 이미지극의 거장이다. 연출가뿐만 아니라 안무가, 배우, 화가, 조각가, 비디오 아티스트 등으로도 활동하면서 다양한 실험을 펼쳐온 예술가다. 미니멀리즘과 해체주의의 경향을 강하게 보여주는 그의 예술은 기존의 연극적 문법을 과감히 벗어던지면서 너무 시대를 앞서간다는 평을 들을 정도였다. 그가 미국을 떠나 독일에서 주로 활동해온 것은 그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그를 ‘미국을 대표하는 실험적 연출가’로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는 독일에서 환영받았고 이미지극의 거장이라는 평가도 그곳에서 나왔다.
윌슨의 이미지극은 빛, 소리, 이미지, 신체의 움직임 등을 통합해 강렬한 미적 경험을 전달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특히 신체 움직임에 관한 고정관념을 해체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연극 속 등장인물은 무대 왼쪽에서 오른쪽까지 30분에 걸쳐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그는 2003년 이후 독일의 극단 ‘베를린 앙상블’과 다수의 작품을 함께해왔는데 이번에 한국에 소개되는 <셰익스피어 소네트>는 그중 하나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1949년 창단한 베를린 앙상블은 정치적 현실에 주목했던 브레히트의 의지를 여전히 지키고 있는 극단으로 평가받는다. 도이체스 테아터, 샤우뷔네 극장과 더불어 독일 연극을 대표한다. 이번 한국 공연이 첫 내한이다.
<셰익스피어 소네트>는 셰익스피어가 쓴 154편의 소네트(짧은 정형시) 중에서 짝사랑의 고통, 인간의 필멸, 시의 영원성을 다룬 25편을 무대화했다. 셰익스피어를 비롯해 당시 귀족들이 등장인물로 나온다. 연극평론가 김윤철은 “철저한 아방가르드였던 윌슨이 언제부턴가 대중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셰익스피어 소네트>는 바로 그 지점에 놓이는 연극”이라며 “이미지극의 극치”라고 평했다. 베를린 앙상블의 첫 내한은 10월2일부터 31일까지 펼쳐지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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